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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개정, 당장 해야 할 이유 없다


헌법 개정을 향한 정부와 한나라당의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헌법 개정 문제는 촛불시위와 금융위기, 그리고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들의 서거에 따른 조문정국으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사안이다. 그러나 정부 지지도가 회복되고 권력구조 개편이 이명박 정부 임기 중 주요 정치업적의 대상으로 등장하면서 헌법 개정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8ㆍ15 경축사를 통해 중ㆍ대선거구제의 도입 및 행정구역 개편 등을 제시하면서 필요하다면 헌법 개정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은 헌법과 관련된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기보다 권력구조 문제만을 논의하여 개정하자는 ‘제한개헌론’을 공식 거론함에 따라 헌법 개정문제를 더욱 구체화했다.

사실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에 대한 개정문제가 국정의 핵심 사안이 되었던 것은 대통령선거를 앞둔 2007년 1월 노무현 정부가 ‘4년 중임제’ 헌법 개정 추진 의사를 공식화했을 때다. 당시 노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신임을 물을 수 없고 신임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국정수행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행 헌법 문제를 거론하며 4년 중임제로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당시 국민은 물론 여야의 정치권 전체가 나서서 지금은 때가 아니고 제18대 국회가 구성되면 그때 검토할 사안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자 수면 아래로 들어갔던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 김형오 국회의장이 헌법 개정을 국회의 가장 주요한 과제로 설정하면서 김종인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헌법연구자문위가 헌법 개정 방향을 논의했고 대통령의 권력 분산과 국회 권한 확대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로 제출된 상태다.

헌법 개정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제안과 곧 시작될 국회 차원의 헌법 개정 논의는 진행되기에 앞서 몇 가지 검토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과연 현행 헌법에 대한 문제점과 그에 따른 개정 방향에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현재 제기되는 헌법 개정 논의는 일단 화두로 제시하고 개정될 필요가 있는 부분을 찾아서 바꿔보자는 식이다. 본말이 전도된 진행방식이자 매우 무책임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국민적 합의나 절실함이 없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늘 그렇듯 국민적 절실함이 배제된 헌법 개정 논의는 결국 헌법 개정 추진세력들이 헌법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춰 바꾸는 식으로 전개되게 마련이다. 이에 우리 헌정사에 반복되었던 정치적 목적과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이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물론 현행 헌법이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1987년 헌법은 그 시대의 국민적 절실함을 집약한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단임제, 지방자치제의 추진과 국민기본권 강화를 위한 헌법재판소 설치 등이 그것이다. 비록 미흡하나마 당시의 집약되고 표출된 국민 열망을 담아내었다는 점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다. 헌법 개정이 먼저 제기되고 헌법 개정을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이냐를 토론하는 기이한 구조이다.

둘째, 조성된 국민합의의 방향과 헌법 개정 추진세력 간의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괴리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지금 헌법 개정을 제기하는 측은 현행 헌법상의 대통령 권력을 완화시키는 권력분산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 대안으로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 4년 중임의 대통령제도 논의의 대상에 포함시켜 놓고 있다. 또한 상ㆍ하 양원제의 도입이나 예산편성권 및 회계감사권의 국회 이관 등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가 국회로의 권력 강화와 권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는 권력구조와 관련해 국민 대다수가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가자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헌법 개정 추진세력들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추진하는 것과 국민 보편의 권력구조와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최고 통치자를 국회에서 선출함으로써 현 단계에서 국민의 직접 선택권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하냐의 문제에서부터 과연 우리 국회가 권력의 중심이 되었을 때 행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지켜질 것이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걱정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대통령제도 안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에 대한 부적응과 혼란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셋째,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헌법 개정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때 헌법에 담아낼 것을 목적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각종 요구가 분출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이를 담아낼 준비와 여건이 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국회 차원의 논의를 넘어 국민투표를 전제로 국민토론과 여론 수렴에 들어가게 되면 각종 정치세력은 물론 사회 각계가 정치적 이익표출에 적극 나설 것이 분명하다. 통일과 영토조항 등의 체제 문제에서부터 경제에 대한 규제 강화와 사회적 분배 문제는 물론이고, 때 이르게 사회복지국가 모델까지 대두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결국 이제 막 시작된 헌법 개정 논란은 국회의 권한 강화라는 목적에서 시작되어 국가체제의 섣부른 변형으로 전개되는 운명을 맞게 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자율성과 책임성이 확립되지 않고 의회제도의 경험과 정당제도가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각제니 이원집정부제니 하는 국회 권력의 강화는 또 다른 권력투쟁이자 권력 나눠먹기일 뿐이다. 특히 최고통치자를 국회에서 선출할 때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우리 정치는 더 혼란스럽고 비제도화된 막후정치로 운영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국민합의와 절실함이 없이 진행되는 현재의 헌법 개정 논의가 불필요한 논쟁과 국가적 에너지 소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결국 헌법 개정 절차가 국민통합과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대적 국론 분열과 정치투쟁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는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국회 권력의 강화라는 일차원적 헌법 개정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의 국면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헌법 개정 논의를 할 때가 아니라 우선 대한민국과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국민합의 조성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국론이 한 방향으로 모아졌을 때, 그 때 비로소 그 방향을 구현할 헌법 개정을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순리이고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며 어렵게 형성시킨 한국 정치의 새 판을 깨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kwangdong@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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