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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정치적 분쟁에서 벗어나야


지난 10월 29일 미디어관련법에 대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간의 권한쟁의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있었다. 몇 달 전인 7월에 국회본회의에서는 미디어관련법에 대한 여야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그 결과 과반수의 의원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법안에 대한 투표가 이루어지고 부결되자 재투표로 이를 통과시켰다. 이때 일부 야당의원이 여당의원의 표결을 방해하거나 여당의원의 단말기를 이용하여 투표하는 사례도 있었다. 야당의원들은 이러한 행위가 헌법이 정한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 표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했고, 법률안에 대한 가결 선포행위가 무효임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였다.


이 사건의 쟁점은 법안의 처리과정에서 정치세력간의 물리적 충돌로 정상적인 법안처리가 불가능하여 국회법 절차를 벗어난 법안처리가 이루어졌을 때 국회의원의 권한침해가 있다고 할 것인지 그리고 권한침해가 있다면 그 결과 해당법률이 무효라고 할 수 있는 지의 여부이다. 1995년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간의 권한쟁의 사건에 대해서 그것은 국회 내의 문제로 헌법이 정한 권한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하였다.1) 그러나 1997년 헌법재판소는 다시 이전의 결정을 번복하여 국가기관간의 분쟁에서 권한쟁의 심판이외의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2)


이번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일부 법안에 대하여 국회의원의 심의 표결권에 대한 침해가 있었지만 이들 법률안이 무효는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결정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안의 처리과정에서 헌법 제49조의 다수결의 원칙이나 제50조 공개의 원칙이 지켜지는 한 일부 국회의원의 권리 침해가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해당 법률안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것은 일부 국회의원의 권리침해를 이유로 해당 법률을 무효로 하면 정치세력 간 물리적 충돌이 격렬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절차상의 일부 하자를 이유로 법안을 무효화한다면 다수당은 이를 피하기 위해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이나 경호권을 동원할 것이고, 이럴 경우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더욱 격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을 줄이려면 물리력을 이용해 회의진행을 방해한 정당이나 국회의원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그렇게 되면 소수당은 물리력 행사의 실익이 적기 때문에 이를 자제하게 된다. 물론 이 경우에 있어서도 정치쟁점으로 삼기 위해 헌법소송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신속한 심판을 통하여 법률의 효력을 둘러싼 혼란이 줄어들 것이다.


국회의원의 권한침해가 있을 때 해당 법률을 무효로 하더라도 물리적 충돌이 줄어들 수는 있다. 소수정당이 물리력을 행사할 유인은 커지겠지만 다수당이 법률의 무효를 막기 위해 소수당과 타협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정치적 타협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훨씬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의 절충적 판결은 국회의원의 권리침해에 대한 사실상의 구제책이 없기 때문에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그래서 권리침해가 없다고 판결하거나 권리침해가 있기 때문에 해당법률이 무효라고 판결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소수당은 정치적 쟁점화로 인한 이득을 얻고 여당은 법안의 통과라는 실리를 얻을 수 있어서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심판에 상당한 시간이 걸림으로써 적지 않은 경제적 비용도 초래하였다. 법안의 불확실성 때문에 관련 법률의 정비나 투자가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헌법은 국가권력으로부터의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이를 위한 국가권력의 분립을 천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이다. 법률 형성권을 가진 국회에서 법률안의 처리과정이 헌법에 위배되면 헌법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간의 권한쟁의 사건을 통하여 입법형성과정에서 헌법적 적법절차가 준수되었는지 심판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번처럼 법률은 유효하지만 그 절차적 정당성에 의문이 있다고 판결하는 것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것으로 정치세력간의 분쟁을 해결하지 못한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분쟁을 심판하는 곳이 아니며 헌법재판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정치세력간의 분쟁에 따른 권한쟁의 심판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다수결의 원칙이나 회의공개와 같은 헌법이 정한 적법절차의 위반 여부만을 심판하고 그렇지 않은 청구는 기각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이 정한 적법절차를 위반하였다면 해당 법률을 무효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헌법질서를 유지하고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갈등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정기화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ckh8349@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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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법재판소 1995.2.23. 90헌라1 전원재판부

2) 헌법재판소 1997.7.16. 96헌라2 전원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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